[소상공인 옥죄는 주류대출] 주류도매업체의 갑질…‘불공정 약정’ 소상공인 외로운 싸움
[소상공인 옥죄는 주류대출] 주류도매업체의 갑질…‘불공정 약정’ 소상공인 외로운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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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금 상환, 의무기간 끝났지만
업체 “계약 갱신됐다” 위약금 요구
법원, 채무부존재확인 화해권고

​ ​“창업자금이 부족한 소상공인들에게 ‘주류대출’은 가뭄 속 단비 같겠지만 결국 독약이 되는 구조입니다. 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에서 대책을 만들어 주십시오”

안성시에서 고깃집을 운영 중인 권정혁씨(45). 권 씨는 지난 2018년 네이버 카페에 ‘주류대출로 인한 피해자를 찾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 후 2년간 용기를 내 권씨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소상공인만 수십여명. 권씨는 여전히 주류업체로부터 대출을 받은 후 억울한 피해를 당한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권씨의 이야기는 2014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안성에 고깃집을 차린 권씨는 가게 운영을 위해 주류도매업체를 찾던 중 지인으로부터 A주류도매업체를 소개받게 됐다.

이후 A업체와 창업지원자금(대여금) 2천만원을 대여받는 주류거래약정을 체결했다. 대여금은 2014년 10월부터 20개월간 매월 100만원씩 상환하는 조건이었고, 무이자였다. 이자가 없는 대신, 권씨는 A업체로 부터 주류를 매월 200만원(대여금의 10%) 어치를 36개월간 의무적으로 공급받아야 했다. 또 권씨는 주류대출을 받지 않은 가게보다 주류를 1상자당 2천~3천원 가량 더 비싼 가격에 공급받았다. 사실상 주류 값에 대여금 이자가 포함된 것. 이러한 조건을 지키지 않을 시 대여금에 대한 이자 연 24%와 대여금의 30%를 위약금으로 지급하는 조건도 있었다.

대여금을 받을 당시만 해도 권씨는 이 주류대출이 문제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여타 다른 소상공인들도 관행적으로 주류대출을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부족했던 창업자금 확보는 물론, 주류업체에서 지원해 주는 냉장고 등 주방 장비들도 권씨에게는 단비 같았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4년 뒤인 2018년 8월 180도 뒤바뀌었다. 2천만원의 대여금을 모두 상환하고 3년의 의무거래 기간도 만료됨에 따라 권씨가 타 주류업체와 거래하자 A업체가 약정서 위반이라며 권씨 사업장 통장에 압류를 걸었기 때문이다.

A업체는 약정서 내용에 ‘서면’으로 계약종료 통보를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계약이 갱신되도록 명시돼 있지만 권씨가 서면으로 통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계약종료를 통보해 계약 위반이라며 압류 사유를 밝혔다. 또 A업체는 권씨가 매달 200만원의 주류매출을 올려주기로 했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업체가 권씨에게 압류를 건 금액은 1천455만원(위약금 600만+대여금 이자 855만원)에 달한다. 권씨에게 빌려준 2천만원을 모두 돌려받고 주류를 3년간 독점으로 공급했음에도 대여금의 70%를 더 달라고 한 것이다.

이에 권씨는 모든 채무를 다 갚았고, 계약해지도 직원에게 통보했다며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 결국 법원은 지난해 6월 화해권고결정을 내리며 권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적 다툼 과정에서 권씨는 A업체로 부터 자신과 같은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결국 네이버 카페에 피해자를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권씨는 “소송 과정에서 A업체는 단 한 번도 법원에 출석하지 않았다. 소송에서 이기겠다는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또 부동산 담보가 있음에도 불구 운영자금을 압류한 것은 그저 법에 취약한 소상공인을 괴롭히겠다는 악의적인 행태”라며 “소송에서 이긴 후 모든 것을 덥고 넘어가려 했지만, 타 피해자들의 사례를 들어보니 사회적으로 공론화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돼 포털 사이트를 통해 피해자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권씨는 “수십 년 간 관행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되고 있는 주류대출에 대해 이제라도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실태를 파악해 더이상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A업체 관계자는 “어려운 소상공인의 상황을 감안해 압류를 해지해 주고 소송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것”이라며 “대여금 지원도 상호 협의 후 계약한 것으로 위법한 내용은 전혀 없다. 오히려 권씨가 인터넷에 악의적인 글을 올려 회사가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호준ㆍ정민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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