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무분별 조두순 분노, 지역·출소자·가족 잡는다
[김종구 칼럼] 무분별 조두순 분노, 지역·출소자·가족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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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권 무시한 분노의 광기, 법 위에 여론 있는 기형사회 누군가엔 사회적 탄압의 범죄

첫째, 안산시민을 잡고 있다.

수원에서 오원춘 살인 사건이 났다. 범행 수법이 재론하기에도 끔찍하다. 사건 초기 언론이 범죄를 명명했다. 동네 이름을 넣었다. ‘수원 ○○ 토막살인 사건’이다. 수원시가 총력전을 폈다. ‘수원’ ‘○○’을 빼달라고 했다. 언론이 협조했다. 그때부터 사건명은 ‘오원춘 살인 사건’이 됐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기억은 더 절절하다. 화성시민이 들고 일어났다. ‘화성’에서 찍지 말고, ‘화성’을 쓰지 말라고 했다. 도시 명예를 지킨 노력이다.

안산시는 70년대 형성된 산업도시다. 전국에서 근로자들이 몰려들었다. 삭막한 도시라는 선입견이 박혔다. 범죄가 유독 많았다는 통계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산을 어둡게 봤다. 그 안산이 활력있는 문화도시가 됐다. 2000년대 이후로 기억한다. 요 며칠 안산이 다시 침울하다. 조두순 때문이다. ‘안산으로 간다’는 소식이 벌집을 건드렸다. 어느새 ‘안산’을 검색하면 ‘조두순’이 따라온다. 시에 온 시민 전화만 4천여통이다.

둘째, 출소자들을 잡고 있다.

6만명이 교도소에 있다. 연간 출소자는 훨씬 더 많다. 1년 미만 단기 복역자가 있어서다. 사회의 눈총은 따갑다. 출소자라며 손가락질한다. 전과자라며 일자리도 안 준다. 결국, 출소자가 가는 곳은 다시 교도소다. 출소자 전체 재범률이 50%다. 3년 이내 재범률은 22.5%다. 이를 막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법무부 갱생보호공단이다. 기술 가르치고, 일자리 알선해 준다. 희망을 주는 일이다. 이런 노력은 결과로 이어졌다. 재범률 2%다.

경기지부에도 4천400명이 있다. 성범죄 전과자도 있다. 전자 발찌를 찬 사람도 있다. 그래도 모두 열심히 산다. 취업 성공금 180만원을 받기도 한다. 가정을 새로 꾸린 삶도 많다. 어제도 8쌍이 합동결혼식을 했다. 이들이 지금 ‘조두순 현상’을 보고 있다. 출소자를 향한 사회적 분노를 보고 있다. 속이 어떨까. 김영순 경기지부장이 전한다. “다들 불안해합니다.” 직원ㆍ봉사자 350명도 허탈하다. “조두순 분노, 이런 식은 안됩니다.”

셋째, 조두순 가족을 잡고 있다.

수년 전 ‘강력 사건’이 있었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언론은 연일 보도 경쟁을 했다. 범인의 모든 것들이 공개됐다. 그러던 중 고민해야 할 일이 생겼다. ‘범인’의 자녀 신상이다. 잘 자라고 있었다. ‘특별한 재능’도 있었다. 교육계가 키우는 꿈나무였다. 고민해야 했다. 결국, 보도하지 않았다. 몇 언론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도 보도하지 않았다. ‘엠바고’(비보도 약속)는 없었다. 다들 ‘아이는 죄 없다’고 판단을 해서다.

‘조두순 부인’은 죄짓지 않았다. 벌도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참담한 벌을 받고 있다. 이 짧은 워딩 때문이다. “조두순이 출소하면 ‘부인이 있는’ 안산으로 간다.” 부인 소재가 지목됐다. 안산시장이 신문에 기고했다. 대책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조차 부인 소재를 거론하고 있다. “‘부인이 있는’ 경기도 안산시로 돌아온다는 소식….” 구체적 신상까지 이미 떠돌아다닌다. 꼭 집어 주는 셈이다. 마녀 사냥하라며 좌표를 알려주는 것이다.

난장(亂場). 법 위에 여론이 춤추고 있다.

 

올 7월, 한 남자의 신상이 공개됐다. 인터넷 디지털교도소라는 곳이다. ‘지인능욕범’이라는 죄명이 붙었다. 억울하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자살했다. 젊은 고려대생이었다. 이게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법원의 재판 따윈 전심(前審)에 불과하다. 본심(本審)은 인터넷청원 등이 한다. 인권도 없고, 법도 없다. 그저 분 풀릴 때까지 두들겨 팬다. 이런 걸 국가는 여론이랍시고 보고만 있다. 사람 잡은 그 디지털 교도소, 여태 못 없앴다.

‘문둥이 촌’이란게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다. 이름은 잊었다. 얌전하고 반듯했다. 애들이 싫어했다. 집이 문제였다. ‘문둥이 촌’에 살았다. 그땐 그랬다. 병 없는 가족도 함께 넣었다. ‘문둥이 촌’의 야만성은 훗날 규정됐다. ‘국가ㆍ사회가 가한 인권탄압!’ 조두순 현상에서 그 모습을 본다. 동네 까발려 범죄촌 몰고, 출소자 싸잡아 우범 집단 몰고, 가족 신상 털어 혐오 대상 모는 모습. 이 또한 누군가-지역ㆍ출소자ㆍ가족-엔 사회가 가하는 탄압일 것이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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